풍수지리를 따질 여건이 되지 않는 민초들의 무덤 자리에는 종종 물이 흐르곤 했다. 무덤가를 떠돌며 생을 영위한 소염에게 물이란 그리 낯선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차고, 고요하며, 깊이 흘렀다. 이따금 땅 위로 나오긴 하였으나 그나마도 부분이라, 결국엔 흐르고 흘러 저 멀리 알 수 없는 외간 데에 닿는 것이 물이었다.
물론 그도 많은 것을 접하고 먹어 치우며 지식을 얻곤 했다. 이를테면 북에서 서로 질러가는 강은 동강이라, 동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은 연강이라 부른다는 사실. 그 강을 전부 꿰어 흐르는 하나의 물줄기를 장강이라 하며, 그가 살아가는 무덤가는 장강 북쪽에 위치한 서완의 대묘大墓로 일컬어진다는 것. 장강과 동강과 연강은 끝에 이르러 어디인지 모를 '바다'로 합쳐진다는 허무맹랑한 소리까지.
그러나 모든 세월을 통틀어 소염은 바다에 대해 단순 인지 이상을 가진 적이 없었다. 강제로라고는 하나 그를 거둔 스승은 문파의 영산 아래 지은 거처를 좀처럼 떠나지 않았고, 영산 너머와 이전에는 오직 굽이치는 대지뿐이었다. 녹음 짙은 수림을 흐르는 강은 어찌해도 대하가 될 수 없는 법이다. 푸름이란 숲과 하늘을 일컫고, 바다는 시장의 인파를 말할 때나 끌려 나오는 단어인 채 오래도록 살았더랬다. 지나가던 '도사님'께서 그를 주워 기르겠다 호언장담하신 날에도, 그리하여 스승을 모시기도 그러지 않기도 하며 보낸 날들에도 그러했다.
하여 소염은 시체처럼 누워 있던 휘예가 바다를 보러 가자며 채비를 맡길 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절기는 춘하추동의 사 분지 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바닥을 더럽히던 낙엽이 잎맥만을 남긴 채 삭아갈 즈음이다. 아침 내내 스승께서는 뻗치고 엉킨 머리를 내어놓고 얌전히 앉아 계셨고, 빗질을 마친 머리를 다시 모아 단정하게 틀어 올리자 '괜찮구나' 따위의 칭찬까지 내어놓으셨다.
신기한 일이었다. 바라는 것이라곤 본인의 기준에서 안락하고 느릿하게 망가지는 게 전부인 것처럼 굴던 이였다. 내도록 천장 없는 고성과 실체 없는 위협, 드러낸 송곳니와 회초리 따위가 오가던 시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듯했다. 소염은 그런 휘예를 가만히 응시하며 생각했다. 과연, 도사의 길을 닦는다더니 자연을 따라 한 줌 흙으로 돌아가실 때가 되었는가…….
품위 유지를 명목으로 영산에서 매달 내려오는 금편이 간만에 휘예의 술값 대신 토끼털을 누빈 망토 두 개에 쓰였다. 스승께서는 수련을 즐기지 않아 종종 추위를 타셨으니 솜이 들어찬 장포도 한 벌 챙겼다. 품 가득 방한용품을 안고 들어서자 마침 방에서 나오던 휘예가 치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마루 위에 선 채였다.
소염이 달리 얻어먹은 바가 없음에도 훌쩍 커버린 탓에 두 사람의 키는 그리 차이 나지 않았다. 탓에 굳이 턱을 들어 소염을 내려다보던 휘예는 불만 가득한 낯 외엔 아무것도 표출하지 않은 채 문 안으로 사라졌다. 진소염은 바닷가에 가득하다던 모래에 파묻힌 빈휘예를 상상했다. 곧 이루어질 테니 생각이라 부르는 편이 옳았다. 짠 바닷물에 이따금 젖어 들며 천천히 말라비틀어질 희끄무레한 조각. 그야말로 무위자연, 도사다운 최후일 테다……. 요악한 독백은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사그라들었다.
"들어오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출발하려던 시간에 늦었으니 서둘러라."
스승의 가장 나쁜 버릇 중 하나는 그에게 달리 깊은 생각이나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는 양 엄하게 휘두르는 훈계였다. 그가 얼마나 근시안적이며 충동적인지, 얼마나 얕으며 동시에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지 소염보다 잘 아는 이는 없었다.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을 통틀어 그러했다. 오늘은 엄한 스승이고 싶으신가 보지. 조소 섞인 상념을 자색 눈 뒤에 감춘 소염이 허리를 숙이고 마루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체벌과 반성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진소염이 빈휘예의 삶에 익숙해졌든, 빈휘예도 진소염에게 길들여진 탓이다. 그는 뒷마당의 마른나무에서 대강 꺾어 온 회초리로 허공을 갈라대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어깨를 움츠렸다. 불길하고, 흉측하며, 두려운 것. 핵심은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 진소염은 빈휘예의 두려움의 부분, 혹은 전부였다. 빈휘예는 그것을 시인하기 싫은 듯 조용히 회초리를 내려놓고 신을 신었다. 진소염은 옆자리에 개켜 둔 장포며 망토를 들어 스승의 팔에 꿰어 주었다.
바다까지는 꼬박 사흘거리였다. 강줄기를 따라가면 그만인 동도 남도 아닌 서편의 바다를 보겠다는 휘예의 고집이 원인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과 남의 바다는 지나치게 깊은 데다 깎이지 않은 절벽이 즐비해 미숙한 제자가 접근하기에 마땅치 않단다. 헛소리. 사흘 중 이틀은 여관에서 잠들 수 있었으나, 지난밤에는 기어코 노상에서 잠을 청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빈휘예는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다. 전날 머문 여관에서 산 곡주를 홀짝거리며 법술로 불을 피울 뿐이었다. 가정집에 가까운 여관에서 담근 곡주는 희끄무레하고 맑았으며, 취하긴커녕 혀를 축이기에도 부족할 수준이었다. 그러니 스승이 취한 것은 술이 아니라 상황일 터였다. 작게 소란한 대지, 고요한 하늘. 만생이 이고 지고 살아가는 세계. 빈휘예는 산을 이고 살 때보다 부쩍 홀가분해 보였다…… 진소염과 눈을 마주치기 전까지. 스승이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자명했다.
사흘째의 늦은 낮에 다다른 높은 언덕 끝의 절벽에선 끝도 없이 이어진 흰 해안이 한눈에 보였다. 그 너머에서 푸르게 물결치는 물을 내다본 휘예가 마른 입술을 뗐다. 내도록 장포 안에 들어가 있던 손가락이 일렁이는 표면을 곧게 가리켰다. "저것이 바다다." 떨어진 말에선 드물게도 스승의 태가 났다. 곧게 선 스승은 수면에 뜬 채 마구잡이로 일렁이는 태양을 고요히 응시했다. 그 또한 드문 일이었다. 만족스러움과 음울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터라, 소염은 그 낯을 굳이 일그러뜨리지 않길 택했다.
휘예는 네 번의 파도가 절벽을 들이받고 부서진 뒤에야 다시 입을 뗐다. 이번에 그는 하늘과 구분되지 않는 바다의 저편을 가리켰다. 희끄무레한 경계선이 손끝에 놓였다. 진소염은 문득 빈휘예의 손톱 끝이 매끄럽지 못하게 닳아 있음을 발견했다……. 스승의 목소리가 그의 시선을 억지로 잡아 돌렸다.
"물이 평평하게 보이는 저곳이 하늘과의 경계다."
"보입니다."
"위의 일렁이지 않는 부분은 하늘이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물이다."
"그렇습니까."
"땅과는 다른 구분이지. 그렇잖느냐."
"그렇습니다."
스승께서는 땅을 메우는 물과 그 표면에 영롱히 비친 하늘에 대해 말하는 법을 아셨다. 그건 소염으로서는 전혀 예상한 바 없는 일이었다. 빈휘예는 망토 아래의 해진 흰옷을 바닷바람에 나부끼면서도 수평선을 보았고 진소염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니, 그만치 어여쁜 덩어리는 아니었으므로 주워다 놓은 돌덩이처럼 앉아 휘예의 설명을 들었다. 사존께서는 어쩌면 이 장소를 아주 좋아하는 걸지도 몰랐다. 소염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다르더냐?"
휘예는 어느새 소염을 지나쳐 절벽의 끝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바다의 끝을 향해 뻗어 있었다. 시선은 멀리 던져진 채로, 옆에서 보기에도 누그러진 눈매가 온유하기까지 했다. 해진 흰옷과 그 위로 덮은 장포, 어깨에 걸친 망토가 다 함께 휘날렸다. 잿빛 머리카락은 늦은 오후의 따뜻한 햇빛을 받아 부드러운 상아색을 띠었다. 드물게 하늘을 수놓는 자하보다도 선명한 자색의 장식이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돌아보지 않는 등은 도사나 선인 나부랭이의 것과 꽤 닮아 있었다. 어떤 배움은 삶에 깊이 박혀 영영 사라지지 않는 법인지도 몰랐다.
"움직이는 것이 하늘이고, 그렇지 못한 부분이 땅입니다."
절벽에 새긴 파도의 자국이, 그것이 갈아내어 쌓인 모래가 그러하듯. 빈휘예가 이따금 던져놓는 또 다른 배움이 그러할 것처럼. 망토의 부드러운 털 너머 드러난 뒷목이 유독 눈에 띄었다. 무심코 뻗은 손이 갈퀴처럼 휘었다. 목덜미를 잡아채 바다에 처넣자. 생소함은 충동을 촉발한다. 충동은 행동을 촉발한다. 행동은…….
"옳다. 잘 아는구나."
행동은 결과를 촉발한다. 휘예는 여전히 바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감한 긍정을 내뱉었다. 소염은 가만히 손을 거두었다. 이번에 빠른 쪽은 빈휘예의 행동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절벽의 중간에 물 자국을 남긴 파도가 흰 거품으로 사그라들었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바닷바람을 맞는 두 사람은 화산재로 이루어진 석상과 그 그림자의 형상이었다.
백 장은 가뿐히 넘는 까마득한 절벽 끄트머리를 디딘 빈휘예가 그대로 뛰어내린 것은 순간이었다.
간만에 술을 마시지 않아서인지, 눅눅한 바닷바람에 정신이 깨어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오던 길에 밟은 눈 탓에 머리가 맑아졌는진 알 수 없는 일이다. 진소염은 몸을 기울여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푸른 바다 위로 세 겹 겨울옷이 날개라도 되는 양 펄럭이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절벽에 튀어나온 나뭇가지를 밟고 낮게 뛰어올랐다. 계단처럼 이어지는 돌들을 툭, 툭, 툭, 박차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섞여 절벽을 기어올랐다. 마침내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끝이 모래에 파묻힌 순간에, 빙글 돈 스승이 멀리 절벽 위의 제자를 소리쳐 부른 순간에.
"내려오거라."
바다가 실체를 가졌다.